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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의 전설적 아이콘, 엘사 퍼레티의 스페인 저택

1968년 스페인에서 한 소박한 시골집을 본 엘사 퍼레티(Elsa Peretti)는 몇천 달러를 주고 그 집을 구입했다. 당시 그녀가 지불할 수 있는 전 재산이었다. 그 후로 그녀의 재산은 점점 불어났고, 티파니는 50년 전 맺은 인연에서 시작된 그녀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퍼레티의 세 가지 디자인을 새로운 스타일로 출시했다. 바로 본(Bone) 링과 스플릿(Split) 링, 그리고 18K 골드 소재에 물방울 형태로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본(Bone) 커프다. 관능적이고도 유기적인 이 주얼리들은 반세기 전에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동시대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엘사가 그 집을 처음 발견한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산트 마르티 벨(Sant Martí Vell) 마을로 우리를 데려간다. 어느 별이 빛나는 밤, 장미와 등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집을 처음 본 순간 그녀는 사랑에 빠졌으며 황폐한 마을의 언덕 중턱에 위치한 그 공간은 엘사의 피난처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엘사의 아버지 페르디난도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보수적인 가정의 전통을 외면한 딸에게 분개해 그녀가 스스로 생계를 꾸리도록 내버려뒀다.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크슈타트에서 스키 강사로 일하던 엘사는 실내장식 학위를 취득한 다음 밀라노에서 건축가 다도 토리지아니(Dado Torrigiani)와 함께 일했다. 1964년 패션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Ricardo Bofill), 조각가 사비에르 코르베로(Xavier Corberó) 같은 카탈루냐 예술가들과 어울렸는데, 그들은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에 반대하는 ‘라 고쉬 디바인(신성한 좌파)’으로 알려진 이들이었다.

1968년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그녀의 커리어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모델 활동 외에 주얼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스페인 은세공사 빈센트 아바드(Vincent Abad)에게 일을 배운 퍼레티는 벼룩시장에서 꽃병을 보며 영감을 얻어 긴 가죽끈에 펜던트가 달린 네크리스를 만들었다. 이 주얼리는 당시 세련된 히피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 디자이너 조르지오 디 산탄젤로(Giorgio di Sant’Angelo)의 쇼에서 모델들이 착용해 즉각적인 성공을 거뒀고, 그녀의 모델 경력은 주얼리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쌓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1968년 일을 하기 위해 멕시코에 갔다가 은도금한 편자 모양의 안장 고정용 버클을 가져온 그녀는 그 버클로 실제 벨트를 만들었다. 1970년대 초 디자이너 홀스턴의 작업을 돕는 ‘홀스터네트(Halstonettes)’의 일원이 된 엘사는 홀스턴을 위해 주얼리를 디자인했으며, 밧줄처럼 꼬인 긴 실크 스트랩에 래커 처리한 작은 병이 달린 네크리스 등 시대정신을 반영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런 그녀에게 1974년 티파니가 러브콜을 보냈고, 엘사는 산트 마르티 벨에서 얻은 영감을 전부 쏟아부었다. 집 근처에서 본 뱀의 뼈는 네크리스가 되었고, 전갈이 그 뒤를 이었다. 엘사의 창의성은 그야말로 무한했다. 하트, 버클, 콩(라이터와 커프, 클러치에 적용되었다), 뼈, 사과, 망사 등 온갖 형태가 등장했으며, 그 주얼리의 영향력은 실로 놀라웠다. 수십 년 후에 톰 포드 같은 디자이너도 그녀의 주얼리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자신이 디자인한 벨트를 착용한 방식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녀가 소유한 산트 마르티 벨의 건물 중 작업실로 사용한 집은 수많은 스케치로 가득하며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그녀가 만든 작품과 함께 섬세한 청잣빛의 앤티크 중국 도자기를 비롯한 그녀의 수집품이 그곳에 전시돼 있다.

엘사는 맨해튼과 이탈리아에도 집을 사들였다. 맨해튼 집은 라탄 바닥의 시원하고 새하얀 공간이었고, 이탈리아에 위치한 여러 채의 집은 그녀의 오랜 친구 렌초 몬자르디노(Renzo Mongiardino)의 손길로 꾸며졌다. 포르토 에르콜레 해안 지대에 자리한 집에는 분노한 남자가 입에서 화염을 내뿜는 형상의 환상적인 벽난로가 설치돼 있으며, 그 주위에는 허물어진 벽의 균열 사이로 나뭇가지가 자라고 바깥이 보이는 앤티크 트롱프뢰유가 그려져 있다. 궁전처럼 꾸민 로마의 아파트는 몬자르디노의 장엄하고 화려한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곳이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큰 애착을 갖는 곳은 여전히 산트 마르티 벨이었다. 티파니와의 작업으로 부를 축적하면서(2013년 티파니와 엘사는 독점 계약을 연장했고, 엘사는 로열티와 함께 4,700만 달러를 한꺼번에 수령했다) 이 마을에 대한 그녀의 관심도 커졌다.

현재 이 마을에는 18채의 엘사 하우스와 3채의 마시아(전통 시골집)가 있으며, 전부 난도 앤 엘사 퍼레티 재단(Nando and Elsa Peretti Foundation)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녀가 처음 소유한 집은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추가된 고가의 요소, 예를 들어 아래쪽 테라스에 숨겨진 수영장과 정원 곳곳에 놓인 조각 작품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식사 공간에는 엘사가 디자인한 사다리꼴의 벽난로가 있으며 그 주위로 그녀의 놀라운 예술 작품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더 많은 집을 소유할수록 엘사의 비전도 확장되었다. 원래 체납으로 압류된 부동산이었던 기다란 석조 건물은 바닥을 뜯어내고 건축가 란프랑코 봄벨리(Lanfranco Bombelli)가 디자인한 독특한 구리 벽난로를 설치했는데 이 벽난로는 3층까지 이어질 정도로 높았다. 벽난로 아래쪽에 놓인 거대한 테이블은 그곳에서 퍼레티가 보낸 여유로운 시간과 파티를 상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포도밭 건너편의 농가를 샀을 때, 그 집을 매도한 나이 든 농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다. 엘사는 그가 계속 그 집에 머무는 걸 허락했고 둘은 그 집에서 함께 지냈다(퍼레티는 2021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침실로 향하는 검게 변한 옹이투성이 나무 계단의 절대적 아름다움. 한쪽 벽에 장식된 그녀의 파도바(Padova) 식기 세트. 손이 들어갈 정도로 주둥이가 넓은 은도금 꽃병을 닮은 물병. 하늘을 향해 뻗은 소뼈를 연상케 하는 곡선형 은촛대. 전설적인 아이콘 엘사의 세계는 이처럼 강렬하다.

Courtesy Tiffany & Co.

Vogue Korea Team
November 07, 2024